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만(李斗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상사
  • 군번 : 1700074
  • 전몰일자 : 19500713

공훈사항

이두만 일등상사는 충청북도 청주시 대성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고, 정부 수립 준비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1946년 2월 27일 대구에 위치한 육본 직할부대인 제1훈련학교로 입대하여 중화기교육을 받고 원주에 위치한 제6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당시 제1신병교육대는 존재하지 않았음).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6사단 장병들은 즉각적으로 전투태세로 돌입했고, 원주에 위치한 사단 본부 및 제19연대 병력은 아침 7시를 기해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당시 이두만 일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제19연대를 직접지원했다. 따라서 공병소대는 제19연대 병력과 함께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에 춘천에 도착했다. 공병소대는 제7연대와 긴밀한 협조로 소양강 북쪽의 진지를 점령했다가 이날 오후에 북한군의 집중공격으로 소양강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19연대는 6월 27일 오전 10시까지 춘천에서 제7연대를 증원하다가 사단 명에 의거 홍천 북방의 제2연대를 증원하기 위해 차량 이동으로 오후 7시 30분에 홍천 북방의 말고개에 투입되었다. 이두만 일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이곳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 4시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제19연대 장병들은 철수하던 도중인 7월 1일 야간에 북한군 제2사단 6연대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었다. 당시 공병소대도 제19연대를 따라 이천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이두만 일등상사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적 제6연대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장애물을 설치했다. 적들은 아군의 장애물과 화력 앞에 잠시 공격을 멈추었으나, 야간이 되자 다시 공격했다. 이에 공병소대와 제19연대 병력은 7월 4일 음성으로 이동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고, 적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실시되었다. 그는 7월 13일 고원 부근 전투에서 용감하게 장애물을 설치하고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만 일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8092 국)을 추서하고 위패(33판-40면-2174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0-ㅋ-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