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만(李斗滿)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87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두만 일병은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면(現 경산시 하양읍)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시기인 1950년 3월경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3보충대로 배치되었다. 제3보충대는 1949년 9월 15일 경기도 수원에서 창설되어 신병 보충 업무를 수행했다.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장병들의 보충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두만 일병은 입대한 장병들을 부대까지 이송하는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보충대는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부대로 편성되어 김포반도에 투입되었으나, 빈약한 장비와 효율적인 부대 지휘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관계로 전투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두만 일병과 장병들은 투혼을 발휘하며 북한군 제6사단의 전진을 지연시킴으로써 국군의 한강방어선 형성과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보충대는 수원에서 재편되어 7월 4일 육군본부를 따라 대전으로 이동했다. 대전 방어선이 위협을 받자 육군본부는 7월 14일 또다시 대구로 이동했고, 보충대도 함께 대구로 이동했다.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하기 위해서는 병력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교육을 목적으로 8월 14일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이때 제3보충대는 제1훈련소에 편성되었고, 同 훈련소는 신병 훈련과 보충업무를 병행했다.
북한군의 남진이 계속되고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 주요 기관들이 대구에 위치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심해졌다. 당시 전선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대구방위사령부는 제3보충대를 포함한 지원부대들로 기동타격대를 임시 편성하여 이들에 대응했다.
1950년 9월 15일 훈련소 인근에 게릴라가 출몰하자 기동타격대원이던 이두만 일병은 게릴라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두만 일병은 탐색조로서 적을 탐색하던 중 은거해 있던 적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만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8판-5면-04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ㅂ-06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