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만(李斗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06188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이두만 이병은 1926년 10월 28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23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두만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초순, 미 제24사단은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도하공격하여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진격하였고, 10월 19일에 온정을 탈환했다. 그리고 10월 20일에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이두만 이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10월 24일에 청천강을 도하하여 유엔군의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으나,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해 있던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청천강 선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다시 공격을 준비한 후, 11월 24일에 유엔군의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을 개시했다. 당시 사단은 선천까지 접적없이 진출했으나, 인접 국군 부대가 무너짐으로써 사단의 후방이 차단될 것을 우려하여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후 12월 6일에 평양마저 포기하고 철수하여 12월 13일에는 38도선 상의 김화-포천-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주공을 서울로 향해 총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유엔군은 적에게 최대한 살상을 가하면서 평택-삼척 선까지 철수토록 명령했다. 미 제24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면서 1951년 1월 4일에 서울에서 철수했고, 이후 장호원 일대로 철수했다. 그리고 2월 초에 양평 서측의 양자산(704고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두만 이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2월 12일에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양자산 방어진지에서 격퇴하고, 2월 21일에 반격할 때에(일명 Killer작전) 미 제9군단의 예비로서 전방 사단을 후속하며 잔적 소탕을 하며 전진했다. 그는 3월 15일 전투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5면-2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ㄴ-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