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로(李杜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9892
  • 전몰일자 : 19510520

공훈사항

이두로 일병은 경상남도 통영군 도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2월경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9사단 직할부대로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9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상급 부대명에 의거해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후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던 북한군 제10사단이 두타산(1,361고지) 북쪽의 삼화리를 경유해 이동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따라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3월 12일 송계리에 투입되었다.
연대는 북한군을 차단하기 위해 남쪽과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적들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완강하게 저항했다. 적군은 밤이 되어 아군이 공격을 잠시 중지한 틈을 이용하여 18일 새벽에 포위망을 뚫고 북쪽의 목계리로 도주했다.
유엔군은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9사단은 적의 저항을 받으며 4월 중순 하진부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사단은 미 제8군의 작전계획에 따라 5월 7일 미주리(Missouri)선 확보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중공군은 1951년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하지만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1년 5월 20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로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ㅍ-05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