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길(이두길)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118003
  • 전몰일자 : 19521024

공훈사항

이두길 소위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그는 장교가 되고자 병기 사관후보생 제6기 제5차로 병기학교에 입교하여 주특기 교육을 수료한 후, 1951년 10월 26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육군 포병학교에 병기장교로 배치되었다.
포병학교는 1951년 11월 3일 진해를 떠나 전남 광산군 극락면 극락동으로 이동했고, 1952년 2월 20일 교육총감부가 창설됨에 따라 육본 직할에서 교육총감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한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1950년 9월 16일부터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하자, 미처 북으로 도주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과 연계하여 유엔군 후방지역을 교란했다. 이들은 후방의 지원 시설이나 군사학교를 습격하기도 하고, 호남선과 주변 국도를 이용하여 전방으로 투입되는 보급 물자들을 습격하여 파괴하거나 탈취하기도 했다. 이들의 습격, 파괴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포병학교가 위치한 광주는 포병학교와 상무대를 포함한 군사학교들이 위치하고 있었고, 철도 및 도로와 인접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적 게릴라들이 출몰했을 때 포병학교에서도 출동하여 소탕작전을 펼치곤 했는데, 학교는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 소위는 병기정비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때대로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2년 4월 29일 학교 인근에 게릴라들이 출몰하자, 이 소위와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두길 소위는 기동타격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도주하는 게릴라들을 추적하다가 그들의 기습사격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에서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1952년 10월 24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길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3묘역-판-11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7-ㄹ-00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