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기(李斗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749436
  • 전몰일자 : 19511108

공훈사항

이두기 이병은 1928년 12월 4일에 경상북도 대구시 산격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하순, 경북 신녕의 제6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두기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제6사단은 국군 제2군단의 예비로 평안남도 영원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은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할 위협을 느껴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고, 이에 제6사단은 적을 저지하다가 1951년 1월 1일 주간부터 진지에서 철수하여 2월 초에는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아 격퇴하고 반격으로 4월 중순에 화악산까지 진격했다. 이후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으며, 이어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경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까지 진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자, 유엔군사령부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활동을 하도록 각 부대에 명령했다. 이두기 이병이 소속된 제6사단은 우선 방어진지 전방의 819고지를 8월 30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다. 나아가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교암산을 공격하기로 했다. 사단은 10월 13일부터 공격하여 9일 동안 중공군을 대파하고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탈환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에서 보강작업을 하며 적의 도발에 대비해 감시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8일에 수색작전 중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기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7판-1면-2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ㄴ-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