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경(李斗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115934
  • 전몰일자 : 19510511

공훈사항

이두경 하사는 1924년 3월 8일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50년 3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두경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0년 8월 9일부터 시작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세를 물리치고 반격 및 북진으로 전환하여 제3사단과 함께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 확보하기 위해 원산시가를 감제하는 고지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189고지-136고지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청진에서 철수한 후 12월 17일 또다시 흥남항에서 철수하였다.
이두경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10일에는 송계리-삼척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4월 15일 재반격을 개시한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한계령-오색리-관모봉을 연하는 선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구축하였으며, 적의 보급 및 병력의 집결지인 설악산을 점령하고 가리봉-용대리로 진출하기 위하여 약수리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두경 하사와 연대병력은 5월 7일부터 설악산지구전투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인한 영향과 식량과 탄약의 부족 등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이 하사와 장병들의 공격은 좌절되기 일쑤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최선봉에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두경 하사는 1951년 5월 11일 인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경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8판-2면-2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ㅍ-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