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두(李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81678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이두 하사는 1926년 3월 20일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1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었다. 그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15사단이 창설되면서 제38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제15사단은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제57·58·59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 그리고 11월 14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8·39·50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0일부터 1953년 1월 10일까지 부대교육훈련(UTC교육)을 하고, 1월 12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1월 30일 제5사단이 수행하던 동해안 지구 방어임무를 인수했다. 사단은 남강 남안의 554고지-351고지-동해안에 이르는 16km의 정면을 맡았고, 연대는 사단의 우전방 연대로서 351고지 일대의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연대는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진지를 보강하면서 적진교란과 포로획득 목적의 위력수색, 적 침투방지를 위한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북한군은 6월 본 공세에 앞서 351고지 일대에 전력을 집중했다. 사단 전방의 북한군 제7군단 예하 제7사단은 6월 2일 집중 공격을 감행했고, 제38연대는 전력을 다해 방어에 임했으나 결국 351고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에 사단은 제50연대를 투입하여 6일까지 4차례나 역습을 가했지만 끝내 351고지를 탈취당했고, 제38연대는 인접한 339고지로 물러났다(제1차 전투). 사단은 제21사단 제63연대가 배속되자 이 연대를 제39연대와 임무 교대하여 좌전방에 배치하고, 6월 15일 제39연대로 역습을 실시했으나 351고지 탈환에는 실패하고 말았다(제2차 전투).
7월 17일부터 18일까지 북한군 제3사단이 339고지를 집중 공격했고, 제38연대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적에게 넘겨주고 휴전을 맞게 되었다(제3차 전투). 이 하사는 이 전투에서 분대원을 독려하며 진지를 지키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7월 2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두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6-ㅊ-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