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희(李東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50038
  • 전몰일자 : 19510412

공훈사항

이동희 하사는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로 배치되었고, 수색대에 의무병으로 전속되었다.
제11사단은 8월 27일 영천에서 창설했으며, 예하 연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역에 각각 분산 배치되었다. 이동희 하사가 소속된 수색중대는 사단 본부와 함께 육본 명령에 의거 10월 10일에 대구를 출발하여 14일에 남원에 도착했다.
사단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게릴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게릴라의 재집결을 봉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이동희 하사는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로 함께 제9연대로 파견을 나가 3월 17일에 화학산 일대에서 많은 적 게릴라를 사살하고, 3월 22일에는 순천을 습격한 게릴라들과 교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공비들의 세력 단위 활동은 소멸되었으나, 소규모 활동은 이어 갔다.
사단은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 인계 완료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속초-간성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 의무대는 작전이 있는 곳은 항상 투입되어 부상자로 치료와 중상자 후송 등 전투병 못지 않은 일을 한다.
이동희 하사는 수단 수색대에 의무병으로 전속되어 있었는데,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4월 12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부상병을 치료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7묘역-9판-101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ㅎ-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