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희(李東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85315
  • 전몰일자 : 19510609

공훈사항

이동희 하사는 1928년 2월 19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진구 부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38도선 일댕의 방어진지에 철수하고 있을 때인 1951년 1월 5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희 하사가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인 1951년 2월 중순, 제2사단은 2월 13일에 안동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교란을 일삼던 북한군 제10사단을 소탕하는 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전방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 얼마 후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맞아 격퇴하고, 5월 20일을 기해 바로 반격으로 전환하여 적의 주력부대와 예비대가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에 섬멸하고자 했다.
제2사단은 군단의 명에 의거 먼저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작전을 해주고, 5월 24일 오전 7시에 본격적인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일제히 공격을 재개하여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인 호명산을 점령했고, 5월 28일에는 적을 추격하여 석룡산-백적산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어서 사단은 6월 1일부터 육단리-적근산을 연하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하기 위해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 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공격을 했다.
이동희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서 전방연대를 후속하다가 다목리 일대에서 제31연대를 초월공격하여 김화 동쪽의 육단리를 향해 진격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선두에서 포병화력을 지원받으면서 신속히 전진했다. 그는 분대장으로 6월 9일 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6판-2면-0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ㄷ-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