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희(李東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905224
  • 전몰일자 : 19510124

공훈사항

이동희 일병은 1932년 8월 6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20일 수도사단에 입대하여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동 연대는 12월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국군이 철수하자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기 위해 북한군 제2군단이 부대 간격을 이용하여 중동부 전선으로 침투했다. 제2군단은 제2사단이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일대로, 제9사단과 제27사단이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일대로 각각 침투했다. 그리고 제31사단이 경상북도 영주군 남대리 일대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군단 예비로 경북 춘양에 집결 중이었다. 제3군단은 제3사단을 남대리 방면으로 추진시켜 영월의 제7사단과 함께 남북에서 협공을 펼치게 했다. 제3사단은 1951년 1월 14일 기동을 개시했고, 제18연대는 봉화를 거쳐 물야면으로 기동했다.
연대는 1월 15일 선달산(남대리 동쪽 5km), 남대리 남쪽의 1,097고지와 마구령을 목표로 공격하여 19일까지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북한군 제31사단의 거점인 남대리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월 24일 끝내 전사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호응하여 원주에서 영월을 거쳐 경상도 내륙으로 침투하려던 북한군 제2전선부대를 차단할 수 있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33판-3면-2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ㅍ-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