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희(이동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78309
  • 전몰일자 : 19510614

공훈사항

이동희 이등중사는 1929년 7월 31일 경기도 연백군 연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9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동희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북한군의 주공이 예상되는 고랑포 정면 임진강 남쪽의 장파리-마포리-도감포 일대에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12월 31일 임진강 남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중공군은 후속부대를 도하시켜 연대를 추격하기 시작하였고, 또 일부 중공군은 적성 남쪽 진지로 접근하며 추격해왔다. 이로인해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사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진지 일부를 돌파당하였다. 부대 장병들은 밤새도록 돌파구 확대를 기도하는 중공군을 맞아 총력전을 펼쳤다.
이동희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 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서울 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을 문산 축선에 투입시켰다. 곡릉천 서쪽의 죽원리와 지영리 일대로 진출한 이 이등중사와 연대는 오후 5시경 곡릉천을 도하 북동쪽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연대의 공격도 봉일천-삼송리 도로 동쪽의 248고지 일대에서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좌절되었으나 다시 야간공격을 기도하여 자정 무렵에 목표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희 이등중사는 1951년 6월 14일 파주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희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ㅊ-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