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희(李東熙)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27

공훈사항

이동희 경사는 1920년 11월 24일 전남 구례군 산동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소속으로 재직 중 전주에서 전사했다.
북한군은 1950년 7월 18일 강경을, 7월 20일 곡성을 점령한 후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진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7월 20일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7일 북한군 제4사단의 선두 부대가 육십령에 배치된 아군 경찰부대를 공격하자 경찰은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장수와 함양 방면으로 철수했다. 7월 31일 진주가 함락되자 군경부대는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하게 되었다.
8월 하순이 되자 경찰부대는 적의 최종공세에 대비하여 진동리지구에 경남경찰, 전남경찰을 배치하고, 함안지구에는 전북경찰을 배치하여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했다. 또한 의령 방면에서 침공하는 적 제7사단에 대비하여 전북경찰 1개 대대를 함안군 법수면에 배치하고, 미산령과 전투산에는 전북경찰독립대대와 전남경찰 2개 중대를 배치했다.
9월 1일 북한군의 공격으로 미 제25사단의 정면이 돌파되어 함안을 빼앗기고 말았다. 미산령 일대의 미 제24연대와 경찰부대는 적의 공격에 밀려 후퇴하게 되었고, 적은 창원군 칠서면까지 공격함으로써 마산의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아군의 반격으로 적을 격퇴하고 함안을 탈환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함에 따라 전북경찰국 소속의 경찰도 9월 17일 전주를 목표로 함안에서 출발하여 9월 26일 전주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시기 아직 북으로 퇴각하지 못한 북한군들이 아군 군경부대에 대한 공격을 했고,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전주역 인근에서 적을 격퇴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희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ㅎ-04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