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휘(李東徽)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6

공훈사항

이동휘 경사는 1924년 12월 6일 전북 김제군 봉남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무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장수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전북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무주경찰은 금산-무주, 무주-김천, 무주-영동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고 곡성-전주 방향으로 남진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편 제7사단(제3연대·제9연대)과 경찰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부대들은 무기와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전투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7월 20일 북한군 제4사단의 선두 부대가 육십령에 배치된 아군 경찰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경찰은 방어작전을 펼쳤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장수와 함양 방면으로 분산 철수하게 되었다. 7월 26일 무주경찰은 적의 공격을 저지하며 장수 방면으로 후퇴하던 중 장계에서 적과 교전이 벌어졌는데, 이때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ㄱ-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