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훈(李東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65537
  • 전몰일자 : 19530401

공훈사항

이동훈 일등중사는 1928년 7월 27일에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20연대에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위해 9월 25일에 편성 완료되었고, 예하 부대로 제9·제13·제20연대를 두었다. 당시 이동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경남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모태로 재창설되었고, 그는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후 연대는 10월 초순에 광주지역으로 이동하여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완전히 격멸했다.
제11사단은 4월 6일 호남지역 공비소탕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공산군 4월 공세와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제20연대는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월비산(459고지)을 11월 17일에 인수했으나, 북한군 제9사단이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공격하여 11월 24일까지 수차례 공방전을 펼쳤다. 결국은 연대가 월비산에서 철수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쌍방은 방어진지 보강에 힘썼다.
이동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1952년 4월 15일에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고, 7월 11일에 양양에 위치한 사단으로 다시 복귀하여 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했다. 이곳에서 장병들은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지휘하는 소대는 1953년 4월 1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소대를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훈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4-ㅌ-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