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훈(李東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4548
  • 전몰일자 : 19510304

공훈사항

이동훈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소속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 등을 고려해서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8월 27일에 영천에서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제9·제13·제20연대로 편성했다. 이동훈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개편하여 창설되었고, 10월 1일부로 제주도의 육군 제5훈련소로부터 병력을 보충받아 완전히 편성했다. 연대는 10월 초순에 전남 광주로 이동하여 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 서남쪽인 지역에 대대별로 분산 배치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1사단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단계 작전은 10월 1일∼25일까지로 훈련과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입각해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어 공비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공비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 병력을 집중한 시기였다.
이동훈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공비들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공비의 재집결을 봉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전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공비들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개전 초기와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믿고 수백 명 단위로 보급 열차를 파괴하거나 군경을 습격하는 등 강력한 작전을 펼쳤다.
제11사단은 공비를 완전 소멸시키기 위해 2월부터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했다. 이동훈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회문산 및 영암 일대에서 중대 규모 이상 단위로 활동하던 공비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하여 세력으로서 활동을 완전히 소멸시키고자 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3월 4일에 수색작전을 하던 중 소대 규모의 공비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훈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6277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3판-40면-2174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ㄱ-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