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훈(李東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2504545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동훈 이등중사는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제1사단은 청단에서 고랑포까지 94㎞에 이르는 광정면의 38도선 경계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38도선 경계를 하다가 적이 공격을 해오면 임진강 남안으로 철수하여 문산-적성 간의 준비된 전방 방어진지에서 방어하기 위해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병력을 대원리-고랑포 전방에 배치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동훈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임진강 도하 작전에 참전하여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T-34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까지 철수한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해오고,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써 연대는 방어선 중앙이 돌파되고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이등중사를 비롯한 연대병력은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동훈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0월 9일에 고랑포를 출발하여 접적 없이 동북쪽으로 진격, 38도선 북쪽에 위치한 마전리를 점령한 후 19일에는 평양에 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후 10월 25일 아침 운산 공격이 개시되었다. 이동훈 이등중사와 연대는 영변에서 구룡강 동측을 공격하여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운산 시내로 돌입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운산에서 수풍호로 진출할 목적으로 군단에서 배속된 전차를 앞세우고 2개 연대병진 대형으로 북진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훈 이등중사는 1950년 11월 1일 장단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훈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9묘역-1판-1189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ㅁ-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