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602193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환 하사는 1927년 9월 12일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4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수도사단은 1949년 6월 20일 서울시 용산에서 수도경비사령부로 창설되었다. 이동환 하사가 소속된 수도사단은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동두천 축선으로 증원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당시 국군은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없었다. 일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인 2.36인치 로켓포는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없었다. 개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8도선의 방어선이 대부분 무너졌으며, 수도 서울의 방어가 위태로워졌다. 이에 육군본부는 서울방어를 위해 수도권의 부대는 물론 후방지역의 부대까지 모조리 서울 북방에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과 전차부대는 6월 25일 오전 초성리를 돌파해 동두천으로 진격하였다. 이 하사는 의정부를 거쳐 창동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이동환 하사는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했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수도사단은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07전차연대 소속의 전차 수십 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아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하였고,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환 하사는 1950년 6월 25일에 의정부지구 전투에서 중대 선임하사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1-ㄹ-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