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煥)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K1136144
  • 전몰일자 : 19510226

공훈사항

이동환 하사는 1928년 9월 23일 충청남도 대덕군 기성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던 때인 1950년 9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미 지상군지원 한국군(KATUSA)으로 차출되어 근무하다가 국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의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국군과 북한군이 번갈아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연대는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이동환 하사와 연대병력은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청송-평창-양양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으며,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과 기습공세가 시작되었다. 이 하사를 비롯한 장병들이 삼척으로 철수해 강릉 부근에 배치되었을 때인 1950년 12월 31일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한 후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중순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그는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였다. 생사기로에서도 최후까지 손에서 총을 내려놓지 않고 싸웠던 이동환 하사는 1951년 2월 26일 강릉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1095 육)을 추서하고 유해(장병1묘역-112판-494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ㅂ-05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