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8991
  • 전몰일자 : 19511028

공훈사항

이동환 일병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도 홍천 일대에서 적을 공격 중인 상황이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집중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하고,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연대는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4월 3일부터 캔자스선(임진강-전곡-화천저수지-양구-양양을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러기드작전(Operation Rugged)을 개시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북진했고,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확보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하자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이 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미 제10군단장은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명령했고, 사단은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도록 예하 연대에 명령했다. 연대는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제18연대 제1대대를 배속받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다. 하지만 연대는 적의 강력한 저항으로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두에서 돌격을 감행하다 적탄에 맞아 10월 2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73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ㄱ-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