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0549
  • 전몰일자 : 19501103

공훈사항

이동환 일병은 충청남도 대전시 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미 제7사단은 일본에서 한반도로 투입될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동환 일병은 9월 초순 부산항에서 출항하여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상륙훈련으로서 승선훈련과 시가지전투 훈련 등을 실시한 후 상륙함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9월 15일에 미 제1해병사단이 월미도-인천으로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미 제32연대는 9월 18일에 미 제7사단의 선두부대로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진격하며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멸하며 전진했다.
이동환 일병이 소속된 미 제32연대는 서울-인천 국도의 남쪽 지역을 책임지게 되었으며, 경인지역에 마지막으로 상륙한 미 제31연대는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미 제32연대는 9월 21일 저녁 무렵에 안양 북방 2㎞의 300고지와 영등포 남쪽 고지를 점령하여 서울ᐨ수원 간 도로를 차단하였다. 미 제31연대가 9월 22일 수원비행장을 점령하여 중요한 항공기지를 확보하였다. 이후 제32연대는 관악산을 우회하여 과천-우면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 방향으로 도하하여 오후 늦게 남산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정부는 9월 29일 정오를 기해 수도 서울 환도식을 거행함으로써 3개월 동안의 공산 치하에서 신음하던 시민들에게 해방을 줬다.
미 제8군이 서부지역에서 북진작전을 실시할 때, 미 제7사단은 계속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원산상륙작전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사단 장병들은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했다. 이동환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10월 15일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할 때, 이동로를 위협하던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1월 3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3면-1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ㅌ-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