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5501275
  • 전몰일자 : 19501107

공훈사항

이동환 이등상사는 1927년 1월 20일 서울시 종로구 만송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환 이등상사가 소속된 기갑연대는 M8장갑차 27대를 장비한 장갑수색대대, 마필 300대가 편성된 기병수색대대, 도보수색대대 등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육군직할 독립부대로 운용되고 있었다. 기갑연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편입되었다. 사단은 8월 4일 기갑연대를 배속시켜 8월 9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의 해체된 병력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동환 이등상사가 전선에 배치될 당시의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이등상사는 낙동강방어선의 안강 지구에 투입되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낮에는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고,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이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세를 물리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 및 북진으로 전환하여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 확보하기 위해 원산시가를 감제하는 고지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189고지-136고지 산 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다음날(11일) 공격을 재개하여 적의 야포, 박격포, 소화기 사격을 받으면서 시 중심가를 뚫고 북진을 계속하여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이 이등상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최선봉에서 용맹을 발휘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환 이등상사는 1950년 11월 7일 길주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ㅂ-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