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이동환)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9842
  • 전몰일자 : 19510813

공훈사항

이동환 소위는 경상남도 경주시 평안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소위는 1950년 8월경 육군종합행학교에 군사훈련 후 임관하여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소위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9월 10일에는 영천군을 넘어 의성군 방면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10월 하순에는 묘향산맥을 따라 평안북도 희천군에 이르렀지만 이 시기에 중공군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황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11월 9일에 마산리 일대에 배치되어 영원 방면의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이를 격퇴하기 위해 영원방면 40km 지점까지 진출하였다. 이후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떠났다. 연천을 향해 철수하는 국군을 섬멸하기 위해 철수로를 막고 있던 북한군은 집중사격을 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1951년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해 후퇴하여 부대 재정비에 들어갔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3,000여 명에 달했다. 제8사단은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제8사단은 1951년 7월 말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때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계획의 핵심은 적이 점령하고 있는 국군 방어선 남쪽의 해안분지 탈취였다. 이에 제8사단이 주공으로 투입되었고 이 소위는 분지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전투 중 총탄에 맞아 1951년 8월 13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소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7면-2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ㅌ-02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