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환(李東煥)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14

공훈사항

이동환 경사는 1923년 5월 18일 충남 서산군 태안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태안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곡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특별경계로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지시했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에,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1대대는 청양에 제1중대, 정산에 제2중대, 대천에 제3중대를 배치했으나 예산과 홍성에 적이 침입하여 홍성-대천 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제1중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5일 제1대대장은 제1중대 130명을 직접 지휘하여 대천으로 전진하여 오후 4시 대천 동쪽 능선에서 취식 중인 적 수십 명을 발견하고 은밀히 포위 급습하여 적병 3명을 사살하고 2명을 생포했다. 이때 대천 인민위원장과 자위대 간부 등 지방공비 40명도 사살하고 무전기 1대와 소총 8정을 노획했다. 이 무렵 북한군 주력부대는 이미 전주에 도달했다. 이에 제1대대장은 병력을 인솔하여 7월 19일 전북 곡성으로 후퇴했다. 태안경찰은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곡성에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며 적에게 타격을 가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 8월 14일 태안경찰이 곡성 삼례읍에서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쌍방 간 교전이 벌어졌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 5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교전을 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환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ㅂ-06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