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이동화)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0950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동화 하사는 경상북도 금천군 당수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 활동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50년 초순, 의정부의 제7사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화 하사가 소속된 제9연대는 사단의 우측 부대로서 포천 정면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시 그가 소속된 제2대대는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적의 공격으로 전방부대 경계진지는 순식간에 통신이 두절되는 등 무력화되었다. 북한군은 전전차 8대를 선투에 세우고 거침없이 공격하여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뒤이어 오후 4시에 적 보병부대가 포천을 점령했다.
이동화 하사가 소속된 대대 장병들은 중대 및 소대 단위로 흩어져 철수하여 오후 4시경에 태릉으로 집결했다. 이곳에서 육사교장 지휘로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으나, 6월 28일 새벽에 한강교가 폭파되고 국군이 서울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철수했다. 그리고 7월 4일까지 안양천 남쪽고지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가 수원으로 철수했다. 이후 7월 5일 평택에서 부대 재편성 시에 제9연대는 해체되고, 그는 수도사단 제1연대에 편입되었다.
이동화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7월 6일 진천으로 이동하여 진천-청주 축선에서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긴급히 안동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국군 제8사단의 안동 철수를 엄호하고, 8월 1일에 길안(佶安)을 거쳐 8월 5일에 기계-안강 축선에 배치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8월 7일에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싸웠으나, 적의 계속된 공격으로 경주 북방으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곳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8월 16일에 반격하여 호명산을 탈환했다. 그는 8월 20일에 호명산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7판-6면-2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ㅁ-06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이동화 하사는 제11사단 직할로 분류되어 있으나 이 시기에 제11사단은 창설되지 않았음. 이에 제9연대로 분류했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