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李東和)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15895
  • 전몰일자 : 19530203

공훈사항

이동화 하사는 1932년 1월 20일에 경상북도 금릉군 대항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6월 8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6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에 집중했고, 얼마 후 사단은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그때 이동화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교암산-765고지를 연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그가 소속된 대대는 방어진지 전방의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고지는 대치하고 있는 적들에겐 눈엣가시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중공군은 4월 16일 야간에 기습공격으로 575고지를 탈취했다. 연대는 즉각 반격하여 탈취했으나, 이후 4월 18일까지 계속된 고지쟁탈전에서 두 차례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혈투가 있었으나 연대는 다시 탈취하지 못했다.
제7연대는 5월 22일부로 방어지역을 제19연대에 인계하고 사단 예비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동화 하사는 연대로 전입했다. 그리고 10월 21일부로 사단 전투지경선이 확장되면서 제7연대는 사단 예비에서 전방방어진지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교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으로 원래 연대가 방어하던 지역이었다.
이동화 하사가 소속된 제6사단의 담당 지역에서는 1953년에도 큰 전투가 없는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7연대는 다시 사단 예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2월 3일에 사단 후방지역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0741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ㅋ-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