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이동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46855
  • 전몰일자 : 19510301

공훈사항

이동화 일병은 1934년 5월 3일에 경상북도(現 대구광역시) 군위군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던, 1950년 9월 15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자대로 충원되어 보충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하기 위해서는 병력 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 교육을 목적으로 대구에 제1훈련소를 창설하게 되었다. 제1훈련소는 교육대와 보충대로 편성되어 군의 기초적인 교육훈련 및 병기조작과 전술훈련을 실시하는 등 신병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에 주력하는 한편 대구지역 향토방위작전도 병행했다.
후방지역에서는 북한군 패잔병 및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특히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분쇄하고 격멸작전을 벌여 3월 초에는 한강 남안-횡성-강릉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일직선으로 연결된 방어선을 확보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이동화 일병이 소속된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 및 보충대 병력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 왔다. 1951년 2월 9일 대구 북방 팔공산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즉각 출동하여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동화 일병은 적 게릴라들을 색출하려고 분대원과 함께 탐색을 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사자 명부에 전사 장소가 경상남도 통영은 오류로 추정)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5-ㄷ-07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