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이동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104416
  • 전몰일자 : 19500904

공훈사항

이동화 일병은 1928년 6월 3일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동화 일병은 문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이 1950년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하여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일제사격으로 이들을 한때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이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이 일병과 사단 병력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사단은 8월 30일 전투지경선을 조정하고 741-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이 일병과 장병들은 팔공산 북방 정면에 배치되었다. 9월 4일 북한군 제3사단이 부대 간격을 따라 왜관-다부동 도로 남쪽 464고지로 침투하고 있었으며, 좌측방 왜관도 무인지경이 되고 우측방 에서는 북한군 제13사단이 다부동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가산으로 진출하려던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사단 1개 대대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철수하고 말았다.
이 일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동화 일병은 1950년 9월 4일 다부동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3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ㅁ-05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