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이동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0987
  • 전몰일자 : 19500803

공훈사항

이동화 일병은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5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무렵,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전개되었고 전쟁 초기 적군의 막강한 화력에 제8사단은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의 방어구역은 연곡천부터 송림리에 이르는 지역에 형성되어 있었다. 연곡천은 수심이 깊어 도섭이 불가능했고 자주포를 포함한 중장비 또한 통과할 수 없었다.
이에 제8사단은 연곡천 부근에 살상지대를 설정하여 적을 유인, 격멸하려고 했으나 적은 곧바로 공격해오지 않았다. 제8사단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주저항선 전방의 감제고지인 천마봉을 공격해 탈취함으로써 주문진 재탈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분산 철수하는 병력을 수습했으며 적시에 도착한 증원병력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3일 동안이나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북한군 제8사단은 1950년 7월 14일에 장갑차를 앞세워 풍기 읍내로 진출하였다. 이에 제8사단은 영주군의 안정면 동촌리에서 부석면 용암리에 걸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그 결과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북한군의 남하를 10일간 저지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7월 29일 안동을 거쳐 포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북한군을 발견하고 저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적의 일부 병력이 우회하여 제8사단을 포위하였고 좌측이 돌파됨에 따라 제8사단은 토계 텃골 일대로 철수를 계획하였다. 이에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자 제1연대가 지원해 왔지만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였고 최종적으로 안동 시내로 철수하였다. 북한군은 본래 8월 15일까지 대구를 점령할 것을 목표로 총전력을 이용해 진격해왔다.
하지만 아군의 분전으로 이에 성공하지 못하자 연장된 보급로로 인한 지원 부진과 사기 저하까지 더해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반면 아군은 제8사단이 의성지구 전투에서 1950년 8월 7일부터 무려 13일간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펼침으로써 반격을 위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큰 부상을 입고 1950년 8월 3일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ㄹ-09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