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李東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14222
  • 전몰일자 : 19510914

공훈사항

이동화 일병은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1년 3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21연대는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1년 7월 말 성공적인 철미동 지구 전투 이후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1951년 8월 미군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통해 동부전선의 방어선을 전진시켰다. 이에 제8사단은 미군 제10군단 제2사단 등과 인제군, 양구군 일대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제21연대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의 전초기지를 공격하며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제8사단의 공격은 1951년 8월 9일 오전 5시 노전평의 북한군 전초진지를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8사단은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강원도 인제군 서화계곡의 노전평 부근에서 북한군의 전초기지를 공격하며 제2군단 제2사단, 제13사단 및 제3군단 제15·제45사단과 3차에 걸쳐 고지쟁탈전을 전개했다. 제8사단은 1951년 9월 10일 오전 6시를 기해 3개 연대가 동시에 공격을 개시해 11일까지 854고지를 제외하고 주변의 대부분의 고지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1년 9월 14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ㅁ-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