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화(李東華)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4819
  • 전몰일자 : 19500803

공훈사항

이동화 일병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2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의 경계를 책임졌고, 제21연대는 유격대 소탕작전 중에 있었다.
이 일병이 속한 제21연대는 강릉군 주문진에 주둔한 제10연대를 후위에서 지원하는 한편, 후방에 침투한 북한의 무장유격대를 토벌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21연대 장병들이 후방에서 무장유격대 토벌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방의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기습남침을 당했다.
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의 전력은 아군에 비해 매우 우세했다. 때문에 아군은 전방에 배치된 제10연대로 하여금 지연전을 실시하고 제21연대를 강릉군 방면으로 이동시켜 방어태세를 강화했다. 그러나 적 주력의 서측 우회가 우려되면서 이에 제8사단 제21연대는 제10연대에 배치되어 북한군과 격전을 펼쳤다.
북한군의 일부 병력은 산두곡에서 패주한 후 언별리로 향하고 그 우익대는 제8사단을 견제하고자 모전리에 공격을 개시하여 왔으므로 제21연대는 적에게 과감한 반격을 감행하여 이를 격퇴하였고 언별리에 증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제8사단은 강릉군 시가지에서의 방어를 고려했으나 그 경우 강릉군 군민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강릉군의 지리적 특성상 적에게 포위될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6월 27일 대관령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제천, 죽령, 안동 등 중부 내륙지역의 산세를 따라 효과적으로 지연전을 수행했다. 적 2개 연대 병력은 7월 11일 한강 도하를 완료하고 가락동 슬금산 방면으로 압력을 가하여 피아간의 격전이 전개되었으나 아군이 극히 불리한 정세에 빠져 방어진이 붕괴될 상태에 놓였다. 이에 제21연대 1개 대대가 제10연대를 지원하고자 전 병력을 출동시켰으나 적을 격퇴하지 못하고 마조리, 장현리를 연하는 선에 후퇴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병은 1950년 8월 3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화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7-ㅋ-01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