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호(李東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7275
  • 전몰일자 : 19510903

공훈사항

이동호 일병은 1925년 7월 7일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5월 25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소양강 남쪽의 풍암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5월 28일을 전후하여 캔자스선(임진강-연천-하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진출에 성공한 유엔군은 캔자스선을 요새화하고 방어 종심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유엔군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연결하는 와이오밍선(Wyoming Line)선 확보하는 ‘파일 드라이버 작전(Operation Pile Driver)을 전개했다. 이 작전의 일부로 미 제10군단은 46번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신 캔자스선(화천저수지-해안분지(펀치볼)-향로봉-거진을 잇는 선)을 확보하는 작전을 전개했다.
이 작전은 6월 4일 시작되었고, 제7사단은 화천저수지 북쪽의 군량현(양구 서북쪽 5km)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산악지형의 협소한 기동공간을 고려하여 1개 연대씩을 교대로 공격제대로 투입했다. 각 연대는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끝에 6월 10일 이 고지들을 확보했다. 사단은 6월 12일 공격을 재개하여 제3연대가 백석산 능선 상의 917고지에 진출하고, 제5연대가 백석산 남쪽의 731고지를 확보함으로써 군단이 부여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후 사단은 백석산을 확보하기 위해 이 일대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양구 북방의 방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554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교전 끝에 9월 2일 목표를 확보 후, 계속된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돌격을 감행하다 9월 3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9묘역-6판-174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ㄴ-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