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호(李棟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32171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호 소위는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의 남침징후가 짙어가는 시기에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50년 4월 19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육군보병학교에 갑종 제2기로 입교하여 후보생으로 교육을 받고 있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는 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로 서울특별연대를 편성하여 제1사단에 배속하도록 명령했고, 보병학교 학생연대장 유해준 중령은 용산국민학교에서 혼성연대를 편성했다. 이때 이동호 소위를 포함한 갑종후보생 제2기 일부 인원이 보병학교 교도대에 편성되었다.
서울특별연대는 6월 25일 저녁 무렵 문산에 있는 제1사단에 도착했다. 사단은 육사교도대를 우전방 제13연대에 배속하고, 보병학교 교도대를 좌전방 제11연대에 배속했다. 교도대는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의 명령에 따라 교도대장 김병화 소령이 제1, 2중대를 직접 지휘하여 문산으로 이동하고, 제3중대와 중화기중대는 교도대 부대장 지휘 하에 문산포 서측방의 굴촌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문산 돌출부의 제1대대 진지가 무너지자 연대장은 임진강을 연한 전 방어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역습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제3대대가 역습을 위해 6월 26일 오후 1시경 64고지와 운천리 간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으나, 좌측방에 적이 출현함으로써 진출이 차단되었다.
이에 연대장은 교도대에게 제3대대 좌측방에서 역습을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문산 북쪽에 위치하고 있던 교도대(-)가 역습을 개시하여 비 오듯 쏟아지는 적탄 속을 헤치며 적을 격퇴하여 단시간 내에 좌측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임진강 강변 반암리까지 진출함으로써 연대가 전선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호 소위는 역습 시 선두에서 돌격을 감행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동호 소위는 1950년 7월 15일 사후 임관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호 소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2판-2면-134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ㄹ-06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