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형(李東炯)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402586
  • 전몰일자 : 19501025

공훈사항

이동형 이병은 1933년 2월 24일에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1사단 본부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동형 이병이 전입했던 9월 하순, 제11사단은 9월 25일부로 편성을 완료하고 예하 부대로 제9연대, 제13연대, 제20연대를 비롯해 제3, 5, 6, 7, 8경비대대를 배속 받았다. 제9연대는 1950년 9월 30일 대구에서 총병력 2,979명으로 창설되었으며, 제13연대는 9월 26일 진해에서 3,000명의 병력으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제20연대는 9월 25일 삼랑진에서 육군 제6훈련소를 개편하여 창설된 후 10월 1일에 제주도 제5훈련소로부터 장교 87명과 사병 1,500명을 보충 받아 연대 편성을 완료했다.
제11사단 예하 3개 연대는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부여받고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리산지구에 각각 분산 배치되었으며, 배속된 5개 경비대대와 경찰 그리고 청년방위대는 주요시설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제11사단은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07호’에 따라 1950년 10월 10일 대구를 출발하여 10월 14일 남원에 도착했다. 이동형 이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사단 본부에 앞서 선발대로 먼저 남원에 도착하여 사단 지휘시설을 준비하고, 지휘소 주변지역에 대한 지형정찰을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적 게릴라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10월 25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북한군 패잔병들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형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6판-6면–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ㄱ-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