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현(李東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501664
  • 전몰일자 : 19500929

공훈사항

이동현 일병은 경상북도 금릉군 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소백산맥 선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7월 중순 제5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연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국군이 소백산맥 선 상에서 지연전을 하고 있었으나, 계속되는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동해안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3사단은 영덕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 제5사단 및 제766부대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연대는 영덕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가 포항을 점령하면서 제3사단의 후방이 차단되어 고립되자, 사단은 장사동 일대로 철수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하다 17일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북한군 제5사단은 9월 2일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제3사단의 주저항선이 돌파됨에 따라 사단은 소티재 고개 일대와 두호동-환호동 선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공격을 감행했고, 사단은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이때 적 제5사단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강력하게 저항했다. 사단은 치열한 전투 끝에 18일 도하작전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9월 22일 흥해까지 진격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30일)을 차례로 탈환했다. 빠른 진격 속도에 맞추어 지휘통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무전기는 수시로 고장 났고 지형적 영향으로 통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이 일병은 통신 소통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9월 27일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9월 2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4면-2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5-ㄷ-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