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현(李憧鉉)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802

공훈사항

이동현 순경은 1928년 11월 16일 전남 승주군 상사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순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황전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순천경찰은 순천의 주요 시설 경비, 순천-보성, 순천-곡성, 순천-광양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3일 북한군이 광주에 진입하자 전남도경은 전투대대를 편성하여 적을 저지하고자 했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실패하고 지휘부(비상경비사령부)는 화순을 거쳐 벌교-순천으로 후퇴했다.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순천경찰은 후퇴를 시작하여 광양-진주를 거쳐 8월 4일 함안에 도착하였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까지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순천경찰은 9월 22일 순천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와 잔적소탕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순경은 제1-제2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후 이 순경은 제3차 작전에 참가하였는데, 1951년 8월 2일 순천 황전면에 출현한 공비들과 경찰부대 간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비들을 격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현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ㅅ-09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