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혁(李東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550557
  • 전몰일자 : 19510614

공훈사항

이동혁 하사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한 후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혼란에 빠져 있을 때인 1950년 11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동혁 하사의 입대를 전후한 상황은 험난하였다. 예기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사단 작전명령에 의해 1951년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이 하사는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여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그 후 사단은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 하사를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이동혁 하사와 장병들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대규모 작전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정교한 작전이었다.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 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여 병진공격을 개시하였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다.
이 하사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혁 하사는 1951년 6월 14일 임진강 부근 전투에서 적의 기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혁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4판-7면-2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ㄴ-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