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헌(李東憲)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헌 순경은 1926년 3월 5일 출생했다. (출생지 및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개성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개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개성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1사단 및 제6사단으로서 이들은 아군이 배치되지 않은 곳으로 우회하여 후방에서 공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아군진지를 무력화시켰으며, 일부 병력은 열차를 이용하여 경의선의 여현 쪽에서 개성역으로 돌진하여 기습에 성공하였다.
오전 7시 30분경 개성경찰과 우군 간 통신이 두절된 가운데 본부 앞에는 적이 밀려들었다. 대원들은 공격을 해오는 적을 향해 침착하게 사격을 하여 제1진을 물리쳤다. 적은 시내에서 처음으로 경찰의 조직적인 저항을 받자 전차를 동원했다. 오전 8시 5대의 전차가 시가지 동쪽에서 출현하여 포격으로 본부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원들은 일단 방공호로 대피했다. 건물이 파괴되자 적은 따발총을 난사하면서 지서 안으로 쳐들어와 수류탄으로 공격했다. 개성지서장은 최후를 각오하고 대원들에게 총탄 한 탄창만 남기고 최대속도로 사격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이 순경을 비롯한 대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적을 향해 공격했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지서장과 43명의 대원들은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힌 후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헌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ㅅ-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