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항(李東恒)

  • 군별 : 육군
  • 계급 : 병장
  • 군번 : 5703659
  • 전몰일자 : 19510201

공훈사항

이동항 병장은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8월 9일에 서울 용산의 포병학교로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포병 제7대대로 배치되었다. 포병 제7대대는 옹진반도에서 38도선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제17연대를 직접지원했다. 당시 제17연대는 1949년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38도선 경계 및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이동항 병장이 소속된 포병 제7대대는 1950년 6월 25일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았을 때 제17연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나, 연대와 함께 6월 26일에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제17연대는 7월 중순 지연작전 시에 수도사단에 배속되었고, 포병 제7대대는 제10포병대대로 개칭되었고 수도사단을 직접지원했다. 그가 소속된 포병대대는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 수도사단과 함께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제2사단은 7월 20일 함창에서 해체되었다가 11월 7일 서울에서 제17, 제31, 제32연대를 예하 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동항 병장은 창설 요원으로 차출되어 제2사단 본부로 소속이 전환되었다. 이후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총공세(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이동항 병장이 소속된 사단 본부는 중공군의 공격으로 다음 날인 새벽에 사단지휘소를 철수하여 1951년 1월 7일에는 충주에 집결한 후 미 제10군단 예비사단으로 풍기에서 재정비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을 경계했다. 그가 소속된 사단 본부는 2월 1일에 지휘소 경계 중 적 1개 소대 규모로부터 습격을 받았으나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항 병장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5판-1면-1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ㄹ-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