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학(李東鶴)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447
  • 전몰일자 : 19500821

공훈사항

이동학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5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8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릉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정동진 남쪽의 임원진에 북한군 제766부대를 상륙시켜 제8사단의 포위섬멸을 시도했다. 그 결과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대관령, 죽령을 넘어 경상북도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게 되었다.
제8사단이 경상북도로 철수할 당시 북한군 제12사단 주력이 안동을 습격하기 위해 안동 동쪽으로 우회하여 집결한 후 안강 방면으로 이동하고 제7사단 1개 연대는 낙동강으로 도하 중이었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 맥현 지역에는 사단 예비대와 전차 4대가 도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에 제8사단은 주저항선인 낙동강 이남 운산으로 각 연대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8사단은 북한군의 습격을 받아 장교 23명, 사병 814명의 전사, 실종자가 발생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의성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화력의 열세로 인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 장병들은 영천지구전투에 참여하여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17일 기계 방면의 전투에 참가해 운주 방면으로 공격을 감행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8월 17일 오후 11시경 제1대대를 제외하고 대구 정면의 아군 엄호부대로 배속시키고자 일견동에 집결시켜 행동을 개시하였다. 제8사단 제1대대는 1950년 8월 18일 구수동 및 정자동 일대로 이동을 완료하고 진지 배치를 완료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0년 8월 19일 구지동에서 수색전을 거듭 감행하던 중 군단의 명에 의거해 탑동으로 철수하였으며, 대구 정면에서 아군을 엄호 중인 부대와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8월 21일 제8사단 장병들과 함께 사력을 다하여 전투하던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학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2판-5면-0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7-ㅂ-07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