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학(李董鶴)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191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동학 일병은 경기도 인천시 연희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 1월 초, 서울 용산의 수도경비사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였고, 이곳에서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동학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7월 5일에 충주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하던 중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문경으로 철수하였다. 제6사단은 7월 12일에 조령(19연대)과 이화령(2연대)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동학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사단명령에 의거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의 용기동으로 이동하여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연하는 능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북한군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했으나, 8월 12일 밤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잇는 고지군을 점령했다. 이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한 조치이며, 더 물러설 수 없는 방어선이었다. 북한군은 8월 12일부터 전면적인 대공세(일명 ‘8월 공세’)를 실시했다.
이동학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후에도 북한군은 계속 공격했으며, 8월 20일에는 연대의 주저항선이 붕괴되는 위기를 맞았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39-ㅎ-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