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표(이동표)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2428
  • 전몰일자 : 19510722

공훈사항

이동표 중위는 1922년 2월 9일 서울시 중구 을지4가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중위는 장교가 되고자 보병사관 후보생으로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훈련을 받고 1951년 3월 24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 소위는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38도선 상의 인제군 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4월 중순 한계리, 가리봉, 한석산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가리봉과 한석산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현리로 물러섰고, 17일 사단 장병들은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적의 끈질긴 추격을 받아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한 가운데 5월 20일 하진부리까지 철수해서야 겨우 병력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평창 송계리에서 부대정비를 한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작전과 매복작전, 보급로 경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중위는 수색대원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소대원을 이끌고 모든 작전에 용감하게 앞장섰다. 그는 간성 일대의 수색정찰작전 중에 7월 22일 적 정찰대와 조우하자, 용감하게 앞장서서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표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4면-6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ㅎ-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