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택(李東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289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이동택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내당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제1공병단에 입대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제1공병단은 경인선 철교(상·하행선)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장병들은 28일 01시 45분경 육군 총참모장의 폭파 명령을 받고 폭파 작전을 시행했으나, 경인선 철교는 원인 불명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6월 29일부터 시작된 한강방어선전투 때 제1공병단은 반파 상태에 있는 경부선 철교에 폭약을 장전하고 폭발시켰으나, 복선의 남단에 있는 교대와의 연결부분이 약간 이탈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공병단은 노량진-수원-평택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7월 5일 오산 북쪽의 일부 교량을 폭파했고, 이후 금강 방어선-소백산맥 방어선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교량폭파와 장애물 설치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계속 남하함에 따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낙동강 선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8월 하순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제2군단은 1950년 7월 12일 경북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의 다부동, 영천 등의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제2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군단은 북진작전 때 제6·7·8사단을 배속받아 작전했다. 군단은 진격하는 제6·7·8사단을 지휘통제하며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포천-철원-평강-곡산으로 북진했다.
야공단은 제2군단에 예속되어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때로는 후방지역에 잔류한 잔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 일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기여했으나, 1950년 10월 5일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 패잔병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3-ㅎ-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