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태(李東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1599
  • 전몰일자 : 19500927

공훈사항

이동태 일병은 경상북도 안동시 월곡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1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입대할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8월 1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공격을 위해 안동으로 집결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제50포병대대의 지원을 받아 안동 북쪽의 천등산과 연곡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위협하였고 제8사단이 위치한 영천 북방에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 이후 북한군은 1950년 8월 25일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하였고, 그곳엔 제8사단과 각 연대를 비롯한 아군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에 제8사단은 항공기로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며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를 분산시키며 그들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제8사단은 주저항선에서 북한군을 끊임없이 저지하였지만 1950년 9월 4일, 계속되는 압력에 지휘소를 선천동으로 이동하여 철수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낙동강 교두보상의 보현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고지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제8사단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영노동, 작산동 선에 위치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격퇴함에 따라 고지를 확보하여 9월 13일에 영천군을 재탈환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0일부터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했다. 북한군은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구산동 전투에서 참패를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포위, 압박하며 공격하였고 북한군은 전초진지를 구축하여 강렬하게 저항했지만 아군의 공세에 의성 시내로 패주하였다. 이에 제8사단은 패주하는 적군을 추격해 전멸시키는 전과를 세웠다. 그러나 이 일병은 안타깝게도 1950년 9월 27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1면-12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ㅎ-07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