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춘(이동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705319
  • 전몰일자 : 19500627

공훈사항

이동춘 일병은 경상북도 김천군 주화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동춘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개성 일대의 방어력 증강을 위한 진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북한군의 도발이 수시로 이어지면서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이 일병은 즉각 방어 전투에 투입되었다.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시작한 북한군은 그날 아침 개성을 점령하고 임진강 방향으로 공격을 확대하였다.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은 아군에 비해 월등히 우세하였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임진강 도하 저지 작전에 참전하여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북한군의 공격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은 임진강을 도하 한 후 문산-서울 축선을 지향하고 있었다. 부대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고, 그 과정에서 연대가 구축하였던 38도선 방어진지는 6월 25일 오전 중에 무너져 버렸다.
이동춘 일병과 장병들은 소규모로 분산된 채 파평산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어 26일에는 파평산 방어진지의 노출된 동측방으로 접근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해 주저항선이 무너졌다. 이후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사단의 주공이 32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문산리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 일병과 장병들은 27일 야음을 이용하여 봉일천 북쪽 위전리-도내리를 연하는 최후저지선까지 결전을 펼치면서 철수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으나 북한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춘 일병은 1950년 6월 27일 봉일천 지구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72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ㄲ-02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