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춘(이동춘)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61127
  • 전몰일자 : 19521028

공훈사항

이동춘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울릉도 우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5월 25일에 입대한 후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8사단 제21연대 장병들은 경기도 남양주군 퇴계원면에서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1952년 3월 미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으로 이동했다. 1952년 3월에 접어들면서 휴전회담은 비행장문제, 중립국감시위원단 구성문제, 포로문제로 인하여 교착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이는 이러한 쟁점이 쌍방에게 군사적 승리를 대신한 정치적 승리를 핵심목표로 두었기 때문이다. 협상이 정체되자 유엔군 측에서는 이들 3가지 문제를 한데 묶어 일괄타결하기로 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일괄타결이야말로 정체 상태에 빠져든 휴전협상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시기에 제8사단은 1952년 3월 23일에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그리고 미 해병대 제1사단으로부터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하여 1952년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심리전을 벌였다. 이후 제21연대는 1952년 9월까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대북방송을 통한 심리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항공기로 폭격을 가하며 진지 보수와 적정파악을 위한 소규모 수색작전 또한 진행했다.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적군은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8사단 장병들은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전투 종료 이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서 부대를 정비했다. 1952년 10월 25일 제8사단은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1952년 10월 28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춘 이등중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7785 육)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ㄷ-04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