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춘(李東春)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200826
  • 전몰일자 : 19501204

공훈사항

이동춘 대위는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대위는 예비역 대위였으나, 1950년 9월 12일 재소집에 즉각 응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동춘 대위가 전선에 부임할 무렵 당시 전황은 낙동강방어선에서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이어 9월 15일에는 안강 평야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형산강 북방의 공격목표를 향하여 진출하던 이동춘 대위와 장병들은 20일에 포항을 탈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대 장병들은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11월 5일 길주 동남쪽에 있는 552고지에 있던 적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와 이 대위와 장병들은 즉각 공군 및 포병의 긴급지원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전진해 나갔다. 이어 11월 19일 봉강 남쪽에서 어랑천을 도하하여 봉강 좌우측 어랑천 일대의 적을 격파하고 적의 진지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10여일 간에 걸쳐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수도사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어랑천 전투에서 참패한 북한군은 회문을 경유 주을, 청진 방면으로 철수하면서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여 사단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이동춘 대위가 지휘하는 사단 병력은 동해안 도로를 따라 북으로 공격하여 11월 21일에 주을을 점령하고, 23일에는 경성을, 이어서 24일 아침에 나남에 접적 없이 진입하여 청진을 점령하였다. 12월에 접어들어 그들은 북한지역을 포기하고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후방지역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해상 철수를 위해 흥남에 집결하였다.
이 대위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부족한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동춘 대위는 1950년 12월 4일 성진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춘 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47판-5면-2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ㅈ-02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