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철(李東鐵)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73622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동철 하사는 1925년 6월 16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3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주로 적진에 투입하여 적정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동철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6사단은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선두부대가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38도선까지 철수하여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2월 3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951년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용문산-가평-화악산-백암산 축선에서 중공군의 2월 공세, 4월 공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하여 6월 중순에는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1951년 7월부터 본격적인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 기간에 제6사단은 백암산 전방의 819고지와 교암산을 공세행동으로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쳐 1952년 10월 21일부로 전투지경선 조정으로 백암산 전방의 552고지-봉화산-교암산까지 확장하여 방어진지를 담당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3년 5월까지 3개 연대가 교대로 전방방어 및 예비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진지 강화와 야간 매복, 주간 수색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이동철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 수시로 침투하여 수집된 정보를 사단에 보고하고, 때로는 적 지휘소 등 주요시설을 습격하여 적의 공격 의지를 분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쌍방 간에 7월 접어들면서 휴전협상 타결이 임박해지자, 중공군은 북쪽으로 돌출된 금성천 일대를 탈취하기 위해 7월 10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을 했다. 당시 제6사단은 상급부대 지원없이 강력히 저항했으나, 중과부적으로 7월 14일에 큰 피해를 받고 후방의 주파령-적근산을 잇는 고지군으로 철수했다. 당시 이동철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여 작전에 기여했으나, 7월 16일에 적에게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적지에서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4618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6-ㅌ-03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