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철(李東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5686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철 일병은 전라북도 군산시 선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6월경 서울 용산에 있는 경리학교에 입교하여 기초군사훈련과 병참 주특기교육을 이수하고 제7사단 병참중대에 배치되었다. 제7사단은 적 주공방향으로 판단된 의정부 축선의 양주군 적성에서 사직리까지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고, 이 일병은 보급과 급식 지원 임무수행은 물론 진지공사와 훈련, 경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병참중대는 의정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단의 예비였던 제3연대가 1950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고, 대신 제2사단 제25연대가 사단에 예속되었으나, 주둔지 수용시설 문제로 아직 충남 온양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사단은 예비연대가 없는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사단 정면에 주공인 제1군단의 주력을 투입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병참중대는 급식과 보급 지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초전에 적의 집중 포격으로 전방 연대의 진지와 보급로가 파괴되고, 지휘체제가 무너지거나 고립된 부대도 많아 적시적인 보급과 급식이 여의치 않았다. 또한, 필요한 급식 및 보급 물자와 수송 차량과 인원도 부족하여 어려움이 컸다. 모든 것이 불비한 여건 속에서도 이 일병은 내 손으로 조국을 지켜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급식과 보급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적탄에 맞아 전쟁 첫날인 6월 25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2면-1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7-ㅈ-06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