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찬(李東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073
  • 전몰일자 : 19501223

공훈사항

이동찬 일병은 부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중순경 제주도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 준비 중이었고, 제18연대는 안강 일대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막아내고 반격 준비 중이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8일에 안강을, 21일에는 기계를 각각 탈환했다. 국군은 공격한계점에 이른 적이 퇴각하자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23일 운주산에서부터 적을 추격하여 청송-춘양-영월-평창-38도선 직후방의 서림리(30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 연대는 10월 4일 간성을 점령한 후, 강원도 원통-양구-회양-신고산-안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격했다. 연대는 10일 원산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11일 시가지에서 저항하는 일부 잔적을 소탕하여 원산을 완전히 확보했다.
연대는 경미한 북한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여왕산ᐨ문천ᐨ고원(원산 서북방 35㎞)ᐨ영흥(원산 북방 45㎞)을 계속 점령하여 10월 15일 영흥과 정평(원산 북방 70㎞)의 중간지점인 금진강까지 진격했고, 이후에도 계속 북진하여 10월 17일 함흥을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장진호, 부전호 방향으로 진격하여 28일까지 개마고원 일대에 다다랐다.
11월 4일 함경북도 황수원강의 수상리와 백산 일대에서 미 제7사단과 임무를 교대한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북진하기 위해 청진 남서쪽의 명천에 집결했다. 이때 적은 제507여단의 패잔병들과 증원된 해안경비부대 등을 동원하여 청진 남방의 어랑천에 경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연대는 명간천, 어랑천 일대에서 11월 8일부터 21일까지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격전을 치렀다.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하여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부령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23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3면-1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ㅌ-01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